자유를 겁탈하지 마

GoodNovel new Completed

웨딩 촬영을 하기로 약속한 날, 임가영은 새벽부터 서둘러 단장을 마쳤지만 정오가 넘도록 차선호는 데리러 오지 않았다. 이제 막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던 참인데 차선호가 금방 SNS에 올린 아홉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새틴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 속 여자는 눈매며 콧날까지 임가영과 판박이인 그녀의 쌍둥이 언니 임유진이었다. 게시물에는 이런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드디어 너의 공공연한 연인이 되었네.]

Chapters (1)

第1章

웨딩 촬영을 하기로 약속한 날, 임가영은 새벽부터 서둘러 단장을 마쳤지만 정오가 넘도록 차선호는 데리러 오지 않았다. 이제 막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던 참인데 차선호가 금방 SNS에 올린 아홉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새틴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 속 여자는 눈매며 콧날까지 임가영과 판박이인 그녀의 쌍둥이 언니 임유진이었다. 게시물에는 이런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드디어 너의 공공연한 연인이 되었네.] 제1화 임가영은 멍하니 휴대폰 화면을 응시했다. 그때 마침 차선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온화했다. “미안해, 가영아. 내가 또 착각했어. 유진이를 너인 줄 알았지 뭐야. 근데 스튜디오 촬영 일정이 이미 다 잡혀서 사진작가님도 재촉하시고 지금 다시 너를 데리러 가기엔 시간이 도저히 안 나네. 다행히 둘이 똑같이 생겼으니까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를 거야.” 임가영은 휴대폰을 꽉 쥐어서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벌써 20년을 넘게 들어온 말. 어릴 적 상을 타왔을 때, 부모님은 언니로 착각해 언니만 데리고 여행을 떠났었다. 중학교 시절, 언니가 수업을 빼먹고 징계를 받을 때, 임가영으로 오인되어 징계가 그녀 이름으로 내려졌다. 고등학교 시절, 밤낮으로 공부해서 명문대를 참관하는 자격을 따냈지만, 부모님은 언니와 함께 참가했고 돌아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 던졌었다. “유진이가 너인 줄로 착각했나 보지.” 그날 밤 임가영은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그때 차선호가 그녀를 찾아냈다. 청량하던 소년은 그녀를 품에 안고 턱을 그녀의 머리 위에 댄 채 단호하게 말했다. “가영아, 난 절대 다른 사람을 너로 착각하는 일 없을 거야.” 그는 정말 약속을 지켰다. 인파 속에서도 언제나 임가영을 가장 먼저 찾아냈고 쌍둥이 언니 임유진과 착각하는 일도 결코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학교 축제 날, 쌍둥이 자매 임가영과 임유진이 똑같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나왔는데 차선호는 임유진을 보고 임가영이라 불렀다. 그 이후로 이 남자가 착각하는 횟수는 점차 늘어났다. 처음엔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지만, 나중에는 그 사과마저도 점점 건성으로 변해갔다. 심지어 오늘 웨딩 촬영을 하러 가서 사람을 착각했을 때도 그저 ‘똑같이 생겼으니 아무도 모를 거다’라고 퉁 칠 정도였다. 임가영이 입을 떼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임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호야, 이리 좀 와봐.” 차선호는 즉시 다정하게 대꾸하고는 임가영에게 말했다. “됐어, 가영아. 우리 거의 다 찍었어. 곧 집에 갈게. 오늘 유진이가 너 대신 하루 종일 고생했으니까 저녁에 맛있는 거라도 좀 해줘.” 전화가 끊어지고 화면이 어두워졌다. 임가영은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차선호가 그녀들을 헷갈리기 시작한 이후로 임가영은 쌍둥이 언니와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지 않았다. 수수한 옷차림으로 말없이 지내며 자신을 언니와 반대되는 존재로 만들었다. 오로지 착각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임가영은 눈을 지그시 감고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그렇게 구별하기가 힘들까? 그런데 왜 모든 좋은 일은 언니에게만 돌아가고 나쁜 일은 전부 임가영의 몫인 걸까? 그녀는 휴대폰을 끄고 집을 나섰다. 머리카락을 백금발로 물들이고 와인색 원피스를 골라 입은 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모습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거실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부모님은 임유진을 가운데 두고 웨딩 사진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엄마 오수희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진짜 예쁘다. 우리 유진이는 역시 사진발을 잘 받는다니까. 가영이었으면 이런 느낌 절대 안 났을 거야.” 아빠 임창균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얼굴은 똑같은데 분위기가 천지 차이라니까. 어릴 때부터 걔는 참... 볼품이 없었어.” 임가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차선호가 그 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가영아, 나갔다 왔어? 유진이가 종일 너 대신 사진 찍느라 끼니도 못...” 다만 임가영을 본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 눈동자에 당혹감이 스쳤다. “너... 염색했니?” 오수희가 대뜸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가영이 너 지금 제정신이야? 머리는 또 왜 이 모양인데? 종일 돈 쓸 궁리만 하고! 어릴 때부터 왜 이렇게 사람 속을 썩여? 유진이 반만 닮아봐!” 임가영은 그저 실소가 터졌다. 언니 임유진은 매달 600만 원씩 용돈을 물 쓰듯 썼지만, 누구 하나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은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집에 손 한 번 벌린 적 없는데 이제 와 제 돈으로 염색 좀 했다고 죄가 되는 모양이었다. 임가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평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제가 뭘 하든 언니보다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잖아요. 돈이나 낭비하는 애라고 하셨으니 이왕 하는 거 확실히 해야 효도 아니겠어요? 그리고 두 분 맨날 언니랑 저랑 헷갈린다면서요. 이제는 확실히 구분하시겠죠? 설마 색깔까지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시죠?” 오수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임가영! 말버릇이 그게 뭐야!” 그때 임유진이 재빨리 오수희를 부축하며 온화하면서도 훈계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가영아, 엄마한테 말이 너무 지나치잖아.” 임가영이 덤덤하게 되물었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참다못한 임창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임가영의 뺨을 후려치려 했다. “이런 불효막심한 년이!” 임가영은 피할 새도 없었지만, 손바닥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차선호가 그녀 앞에 막아서며 임창균의 손목을 낚아챈 것이다. “아버님, 진정하세요.” 그는 뒤를 돌아 임가영을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한층 부드럽게 낮췄다. “가영아, 오늘 일 때문에 화났어?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우리 내일 다시 가서 예쁘게 찍자, 응? 괜히 토라져서 그런 말 하지 말고, 집안 분위기만 망치잖아.” 그렇게 말하며 차선호는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네가 좋아하는 웨딩 장식도 오늘 새로 주문했어. 한번 봐봐.” 평소 같았으면 이 남자 입에서 결혼식 이야기가 나오면 임가영은 금세 기분이 풀려 아무것도 따져 묻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화면을 힐끗 쳐다보더니 태블릿을 밀어냈다. “나 보라색 안 좋아해.” 그녀는 차선호를 올려다보며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난 아이리스 꽃 알레르기 있어.” 온 가족이 아는 사실, 아이리스 꽃을 좋아하는 건 임유진이었다. 임가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차선호의 표정이 굳었다. 임가영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덤덤하게 내뱉었다. “이왕 언니가 좋아하는 장식이라면 이 결혼도 언니한테 양보할게.” 말을 마친 그녀가 계단을 오르려 하자 차선호가 잠시 넋 놓고 있더니 다급하게 따라와 앞을 막아섰다. “가영아, 아무리 화가 나도 이런 일로 농담하는 거 아니야. 내 신부 될 사람은 오직 너라고.” 임가영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 신부 자리도 언니한테 양보할게.” 제2화 차선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차선호는 임가영의 손목을 낚아채듯 붙잡았다. “가영이 너 예전엔 안 이랬잖아. 도대체 오늘 왜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구는 거야?” 임가영은 아무 대꾸 없이 자신의 손목을 감싸 쥔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디가 선명하고 길쭉하며 깨끗한 손, 한때는 이 손으로 그녀를 이끌고 수많은 거리를 함께 걸었고, 그녀가 울 때마다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인파 속에서 언제나 그녀를 가장 먼저 찾아냈었지... 임가영은 무덤덤한 투로 내뱉었다. “나 지금 투정 부리는 거 아니야.” 차선호는 임가영의 표정을 살피다 이내 손을 놓으며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됐어. 너 오늘 감정이 격해진 것 같으니까 일단 올라가서 쉬어. 괜히 홧김에 그러지 말고 무슨 일이든 내일 다시 얘기하자.” 임가영은 시선을 거두고 그의 곁을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그녀가 했던 말은 결코 홧김에 내뱉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런 가족, 그리고 이런 연인이라면 이제 더 이상 미련을 둘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임가영은 집을 나섰다. 인사혁신처로 가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시청 산하 기관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필기시험과 면접 모두 수석이었고 지금은 공시 기간의 마지막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공시 기간이 끝나면 그녀는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된다. 집에서 손쉽게 일자리를 마련해줄 수도 있지만, 임가영은 누구보다 잘 안다. 회사에 들어가 봐야 임유진의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고 가족들의 손아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합격만 하면 온전히 내 힘으로 당당하게 독립할 수 있을 테니까. 이건 임유진도 결코 빼앗아 갈 수 없는 오직 그녀만의 것이었다. 한편 임가영을 맞이한 것은 엄숙한 표정의 중년 남자였다. “임가영 씨 맞습니까?” “네.” 상대방은 앞에 놓인 서류철을 넘기다 미간을 점점 더 깊게 찌푸리더니 마침내 한숨을 내쉬고는 인쇄된 종이 한 장을 탁자 위로 내밀었다. “직접 확인해보시죠.” 임가영은 고개를 숙여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바로 징계 통지서였고 문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조사 결과 응시자 임가영은 음주운전 및 사고 후 도주 혐의가 있으며 그 성질이 악질적이고 영향이 막대함. 관련 규정에 따라 금번 채용 자격을 취소하며 향후 5년간 응시를 금함.] 낙관 부근엔 선명하고 붉은 직인이 찍혀 있었다. “규정상 이런 경우에는 시험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유감이지만 임가영 씨는 채용 자격이 취소되었습니다.” 임가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저 음주운전 한 적 없어요.” 떨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닿았다. “심지어 최근엔 운전대조차 잡은 적 없다고요.” 맞은편의 담당자는 사무적인 어투로 대답했다. “번호판을 조회해 임가영 씨의 남자친구분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분이 블랙박스와 CCTV를 직접 확인하고 임가영 씨 본인임을 인정했어요. 이의가 있다면 소청할 수 있겠지만 임용 자리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서류를 받아 든 그녀의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넋이 나간 채로 인사혁신처를 빠져나와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 앞에 섰을 때, 마이바흐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차창이 내려가고 차선호의 귀족적인 얼굴이 드러났다. 임가영을 발견한 순간 남자의 눈매가 다정하게 풀렸다. 그는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임가영의 손을 잡았다. “집에 갔더니 없길래 여기 와 있을 줄 알았어.” 차선호의 말투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애정이 묻어났다. “왜 이렇게 서둘러? 나랑 시간 맞춰서 같이 오기로 했잖아.” 임가영은 손을 거칠게 빼내며 징계 통지서를 그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게 다 뭐야?” 차선호는 고개를 숙여 내용을 확인했다. 처음엔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남자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아, 이거? 며칠 전에 유진이가 술을 좀 마시고 실수로 사람을 살짝 스쳤는데 너무 당황해서 도망쳤나 봐. 교통경찰이 번호판을 조회해서 나한테 연락이 왔길래 네가 그런 줄 알고 일단 처리해 버렸어.” 제3화 차선호의 목소리는 홀가분하기 그지없었지만, 임가영의 심장에는 천근만근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 “그날 내가 분명 도서관에 있었다고 말했잖아.” “그때 상황이 너무 급박했어.” 차선호는 침착하게 그녀를 달래면서 촉촉한 볼을 부드럽게 쓸었다. “난 네가 그랬을까 봐 걱정도 됐고 마음이 급해 아무것도 살피지 못했어. 나중에 유진이라는 걸 알았어도 이미 처리된 걸 다시 바꿀 수도 없었고. 어차피 유진이는 네 친언니잖아?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해 뒀으니까 누가 그랬든 상관없어.”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걱정 마. 너한테 아무 영향 없을 거야.” 임가영은 그 순간 너무나 어이없어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차선호는 그녀가 이번 시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쏟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또한 이 시험이 임가영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분명히 알고 있을 터였다. 그는 단지 사고를 친 임유진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임가영의 앞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행동했던 것이다. 차선호는 임가영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어깨를 감싸 안고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됐어. 그깟 일 별거 아니잖아. 직장 하나 얻는 게 그렇게 걱정돼? 내가 널 먹여 살리지 못할까 봐?” 임가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차선호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어깨에 얹어진 손을 툭 털어내고 돌아섰다. “가영아...”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도 무시한 채 곧게 앞으로 걸어갔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몇 번 울렸지만, 그녀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두어 블록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가슴을 짓누르던 울분이 조금 잦아들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향한 곳은 법률사무소였다. 임가영은 사건 위임장에 서명했고 나머지는 담당 변호사가 절차에 맞춰 진행할 터였다. 항소 절차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임유진 대신 ‘뺑소니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는 없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열고 차선호가 보낸 여러 통의 메시지를 무시한 채 곧장 연락처로 들어갔다. 두어 번의 신호음 끝에 영국식 억양이 섞인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보자. 우리 가영이가 드디어 마음을 정하고 유학 신청을 하러 온 모양이네?” 임가영은 목구멍이 꽉 조여왔다. “네, 교수님. 전에 제자로 받아주시겠다고 하셨던 약속 아직 안 늦었죠?” 상대방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안 늦었지. 그런데 너 그때 남자친구 때문에 국내에 남고 싶다고, 더 이상 공부할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니?” 임가영은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저 이제 남자친구 없어요.” 수화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내 어르신의 온화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잘했어. 쳐낼 사람은 과감히 쳐내야 해. 그래야 네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지. 필요한 서류 리스트 보낼 테니 서둘러 준비하거라.” 통화를 마친 뒤, 임가영은 학교로 돌아가 성적 증명서, 추천서, 자기소개서까지 하나하나 대조하며 서류 봉투에 담았다. 그렇게 2, 3일을 정신없이 뛰어다닌 끝에 모든 지원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비로소 한숨 돌릴 틈이 생기자 임가영에게 동창회 초대 메시지가 날아왔다. 졸업 시즌이라 잦은 모임에 시달리던 터였고 원래 그녀는 이런 자리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잠시 고민한 뒤, 주소를 보내 달라는 답장을 남겼다. 그녀는 일부러 임유진과 다른 스타일로 옷을 입고 머리 색깔도 바꿨다. 또다시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뒤집어쓰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더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지금 임가영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저녁 8시, 그녀가 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누군가 임가영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임가영? 대박! 스타일 바뀌니까 훨씬 예쁜데?” “이렇게 보니까 네가 유진이보다 이목구비가 훨씬 더 또렷하잖아. 예전엔 왜 그렇게 칙칙하게 다녔어? 아까운 얼굴 다 가리고 말이야.” 임가영이 예의 바르게 미소 지으며 대꾸하려던 찰나, 소파에 앉아 있는 차선호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제4화 차선호는 소파에 반쯤 몸을 기댄 채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의 옆자리엔 다름 아닌 임유진이 있었다. 임가영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룸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곁에 있던 동창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후 차선호가 다가와 그녀의 옆에 앉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가영아, 이틀 동안 내 문자에 답장도 없고 뭐가 그렇게 바빠?” 임가영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편 차선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하긴, 너도 좀 사회생활을 배울 필요가 있어. 유진이처럼 누구랑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성격을 본받아야지.” 임가영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지만 대충 알겠다는 듯 짧게 대꾸할 뿐이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누군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게임을 제안했고 임유진이 가장 먼저 호응하며 나섰다. “좋아, 그럼 술병 돌리기 하자. 병이 가리키는 사람이 질문에 즉답하는 거야. 망설이면 안 돼!” 모두가 찬성하며 분위기는 한층 뜨거워졌다. 몇 차례 술병이 돌아간 끝에 병구는 정확히 차선호를 가리키며 멈췄다. 임유진이 생긋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우리 미래의 제부한테 첫 질문 할게. 고양이 아니면 강아지?” “강아지.” “샤브샤브? 일식?” “일식.” “여름? 겨울?” “겨울.” 차선호는 쏟아지는 질문마다 망설임 없이 속사포처럼 대답했다. 그러자 곁에서 구경하던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가영이 고양이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맞아! 그리고 얘 날것은 냄새 때문에 힘들다고 일식도 안 먹잖아. 오히려 유진이는 좋아하지...” “그러게. 겨울 좋아하는 것도 유진이 아니야?”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소곤거림이 파도처럼 임가영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다만 그녀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때 임유진이 눈을 반짝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임가영? 임유진?” 차선호의 대답은 찰나의 고민도 없이 튀어 나왔다. “임유진.” 순간, 북적이던 룸 안의 소음이 툭 끊겼다.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차선호는 그제야 멋쩍은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나 뭐래? 질문이 하도 빨라서 정신이 없잖아. 당연히 내 여친 임가영이지.” 사람들은 그제야 다시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차 수석께서 게임 반응 속도가 왜 이래? 좀 더 분발해야겠어!” “그러게. 하마터면 여친한테 찍힐 뻔했잖아.” 아무도 그 실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가영의 곁에 앉아 있던 친한 여자 동기가 다가와 작게 물었다. “너 괜찮아?” 임가영은 고개를 돌려 웃어 보이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방금 이슈가 단순한 게임 효과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것은 차선호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진심이었다. 임가영은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선호가 그녀의 움직임을 곁눈질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디 가?” 임가영은 무덤덤한 말투로 짧게 대꾸하며 의자를 밀고 밖으로 향했다. “술기운 올라서 화장실 좀.” 룸을 빠져나오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몇 년 전의 차선호를 떠올렸다. 어릴 적부터 임가영은 늘 집 안의 ‘투명 인간’이었다. 부모님은 임유진만 챙겨서 그녀가 감기 기운이 있어도 호들갑을 떨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정작 임가영은 심각한 질병이나 출혈이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애가 별 유난을 다 떤다’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시간이 흐르며 임가영은 그 상황에 익숙해졌다. 중학생 시절, 손목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도 딱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말해봤자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차선호는 달랐다. 그녀의 불편함을 알아채곤 강제로 손목을 붙잡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접수하고 줄을 서고 검사를 받는 등 오후 내내 뛰어다녔던 그 남자. 의사는 선천적인 일시적 근육 무력증이라고 했다. 일상에 지장은 없으나 꾸준한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이었다. 임가영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차선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야. 너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드는 건 무조건 해결해야 해.” 그날 이후로 차선호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손목을 찜질하고 마사지해주었고 재활 훈련을 할 때면 옆에서 꼼꼼히 감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억을 되짚어봐도 차선호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임가영의 그 어떤 사소한 일도 세상 그 무엇보다 크게 여겨주던 사람. 그가 거듭해서 사람을 착각할 때마다 용서하고 또 용서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한때는 그토록 다정했으니까. 그 다정함이 곧 영원할 거라고 믿었으니까. 제5화 술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낸 탓일까. 임가영은 속이 뒤틀리는 듯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세면대 가장자리를 짚고 몸을 굽혀 헛구역질했지만 아무것도 토해내지 못했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틀어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구토감을 억눌렀다. 그때 등 뒤로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거울 속으로 임유진의 모습이 비쳤다. 문틀에 기대 팔짱을 끼고서 임가영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평소의 온화하고 단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노골적인 승리감만이 감돌았다. “토했어?” 임유진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겨우 이 정도로?” 임가영은 대꾸하지 않고 휴지를 뽑아 손을 닦았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선호가 우리를 구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구분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임유진이 두어 걸음 다가와 낮게 읊조렸다. “걔가 기억하는 모든 취향은 다 나잖아. 무의식중에 선택한 사람도 결국은 나였고.” 임가영의 손길이 멈칫했다. 임유진은 그 미묘한 반응을 놓치지 않고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참, 하나 더 알려줄까? 웨딩 촬영은 내가 찍고 싶다고 졸라서 데리고 간 거고 네가 시청 공무원 합격 명단에서 빠진 것도 내가 일부러 손쓴 거야. 가영이 너는 평생 내 들러리밖에 안 돼.” 임가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에 쥐었던 휴지를 휴지통에 버렸다. 이어서 천천히 몸을 돌려 세면대에 등을 기댄 채 임유진을 쳐다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야, 임유진, 남을 짓밟아야만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거라면 네 인생도 참 비참하다. 아 그리고 차선호? 필요하면 너 가져. 마침 버리려던 참이었거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임유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임가영은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어깨를 밀치면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다시 모임 장소로 돌아가는 대신 그녀는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가 호텔 정문을 나섰다. 밤바람이 불어오자 비로소 속이 좀 나아지는 듯했다. 임가영은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모퉁이를 막 돌아서려는 찰나, 옆 골목에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튀어 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판단할 틈도 없었다. 누군가 억센 힘으로 그녀의 어깨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벽 쪽으로 내동댕이쳤다. 뒤통수가 벽돌 벽에 부딪히고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흐릿해졌다. “너구나! 네가 범인이었어.” 잔뜩 갈라지고 떨리는 남자의 목소리, 그 속에는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돈 있으면 다야? 돈 많은 게 자랑이냐고? 어떻게 돈으로 사람 목숨을 사려고 들어?” 남자의 주먹이 사정없이 그녀를 내리꽂았다. 임가영은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머리를 감쌌지만, 등은 이미 계단에 거칠게 부딪힌 뒤였다. “우리 엄마가 죽었어! 네가 차로 치어 죽였다고!” 그녀는 손을 들어서 막아보려 했지만 팔이 저렸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도 상대는 아예 입을 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임가영은 눈앞의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녀는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거친 통증 속에서 점점 흐릿해지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썼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실 안이었다. 흐릿한 시야가 조금씩 초점을 찾아갔고 온몸의 뼈마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힘겹게 고개를 돌렸더니 병상 옆 의자에는 차선호가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링거액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뚜렷한 옆얼굴 윤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임가영은 잠시 멍해졌다. 예전에 그녀가 고열로 입원했을 때도 차선호는 밤새 간호해주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이 남자는 곧바로 일어나서 아직도 아프냐며 물었었고 허둥지둥 온수를 떠다 주곤 했다. 그때의 임가영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기척을 느낀 차선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눈을 떴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안도하는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연 첫 마디가 고작 이것이었다. “가영아, 대체 유진이를 왜 밀었어?” 제6화 임가영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 입을 열었지만, 목구멍이 바싹 타들어 가며 통증이 느껴졌고 갈라진 목소리가 힘겹게 새어 나왔다. “뭐라고?” “화장실 앞에서 말이야.” 차선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녀를 응시했다. “네가 유진이를 밀치는 바람에 애가 발목을 삐었어. 그 와중에 네가 감정이 격해진 것 같아 걱정된다며 쫓아 내려갔는데 네가 웬 남자랑 시비가 붙었다며? 유진이는 널 보호한답시고 달려들었다가 다쳐서 아직 깨어나지도 못했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한층 가라앉은 어조로 덧붙였다. “유진이가 널 그렇게 아끼는데 왜 자꾸 애를 다치게 하는 거야? 설마 게임에서 내가 걔를 선택했다고 질투 나서 그래? 가영아, 그건 그냥 게임이잖아. 너 어쩌다 이렇게 변한 거니? 유진이 깨어나면 가서 제대로 사과해.” 임가영이 이 어이없는 말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는 꼬박 10초가 걸렸다. 그리고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지금 누구한테 당한 건지 알긴 해? 임유진이 뺑소니로 죽인 그 피해자의 아들이야.” 임가영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분했다. “유진이가 음주운전에 뺑소니 사고까지 친 걸 네가 나한테 덮어씌워서 처분 기록이 남았어. 피해자 아들이 내게 앙갚음하겠다고 덤빈 거라고. 얻어맞은 것도 나고 여기 누워있는 것도 나야! 유진이야말로 내게 사과하고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거 아니니?” 차선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가영아, 유진이 지금 부상을 입고 의식도 없는데 꼭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해야겠어?” 임가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그것도 걔가 자초한 일이지.” 차선호는 할 말을 잃은 듯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한참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영이 네가 이런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 어머님, 아버님이 왜 유진이만 예뻐하시는지 이제야 알겠어.” 그 말을 끝으로 차선호는 뒤돌아 병실을 나섰다. 복도를 따라 그의 발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임가영은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은 채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역시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정곡을 찌르는 걸 잘 아는 법이지. 이후 며칠간 임가영은 병원에서 요양하며 상처를 치료했다. 매일 간호사들이 와서 약을 갈아주었고 가끔 복도에서 동료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301호 임유진 씨 병실은 맨날 사람이 북적거리네요. 부모님은 내내 옆에 계시고 남자친구분도 한시도 안 떨어지는 게 정말 사이가 좋아 보여요.” “그러게요. 302호 임가영 씨는 쌍둥이 동생이라면서요? 둘이 엄청 닮았는데 부모님은 왜 한 번도 보러 오지 않는 건지 모르겠네요.” “듣기로는 동생이 사고를 쳐서 언니까지 피해를 봤대요...” 임가영은 귓가를 스치는 이 모든 말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변호사와 연락하여 소송에 필요한 증거를 확실히 정리했고 간호사에게 노트북을 빌려 오퍼를 꼼꼼히 검토했다. 출국 날짜에 맞춰 비행기 표도 이미 예매해 둔 상태, 퇴원하는 날이 곧 이곳을 떠나는 날이었다. 퇴원 당일 오전, 임가영이 짐을 챙기고 있을 때 병실 문이 열렸다. 차선호가 서류 한 부를 들고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임가영의 손길이 잠시 멈췄지만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짐을 쌌다. “굳이 마중 안 와도 돼. 나 혼자 갈 수 있어.” 차선호는 대꾸 없이 다가와 그 서류를 건넸다. “피해자 가족이 너한테 폭력을 쓴 건 사실이지만 따져보면 그 사람들 처지가 이해는 돼. 나중에 또다시 널 괴롭히지 못하게 할 테니까 여기 합의서에 사인해.” 임가영은 고개를 숙이고 그 종잇장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 합의서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임유진이 그 가족들에게 다시 시달리지 않게 하려는 방패막이일까. 이제는 그런 것 따위 따져 물을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임가영은 펜을 들어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 서명은 지나치게 간결하고 단호했다. 서류를 받아 든 차선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끝내 그게 무엇인지 짚어내지는 못했다. 그는 짐짓 부드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몸 좀 추스르면 혼인신고 하러 가자. 걱정 마, 이번에는 절대 사람 헷갈리지 않을 테니까.” 임가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남자에게 더 이상 기회는 없으니까. 차선호가 떠난 뒤, 그녀는 스스로 퇴원 절차를 밟고 병원을 나섰다. 택시를 잡고서 거침없이 목적지를 말하는 임가영. “기사님, 공항으로 가주세요.” 차가 출발하자 창문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그녀의 얼굴 위로 부서졌다. 임가영은 좌석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눈을 감았다. 편애로 가득했던 가족도, 잘못 엉켜버린 사랑도 이제 싹 다 버리기로 다짐했다.

More GoodNovel Nov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