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100번째 애인이 찾아온 날, 나는 그를 버렸다

GoodNovel 완결

결혼 10주년 기념일, 내 남편 박효성이 100번째 새 애인을 끌어안은 채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 목에 걸린 우리의 정표를 자기 손으로 풀어서 애인의 목에 걸어주었다.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그 여자는 겁먹은 듯 내 예복 자락을 잡아당겼다. “언니, 효성 씨가 이 드레스를 이제는 내가 입었으면 좋겠대요.” 이건 10년 전 그 웨딩드레스를 고쳐 만든 드레스였다. 나는 오늘 일부러 이 드레스를 입었다. 박효성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어리석게도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효성은 결혼기념일에 자기 아내의 옷을 사람들 앞에서 벗겨서 애인에게 입히려고 했다. 모두의 경멸 어린 시선 속에서, 나는 박효성에게 10년 만에 처음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박효성, 우리 이혼해.”

챕터 (1)

第1章

결혼 10주년 기념일, 내 남편 박효성이 100번째 새 애인을 끌어안은 채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 목에 걸린 우리의 정표를 자기 손으로 풀어서 애인의 목에 걸어주었다.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그 여자는 겁먹은 듯 내 예복 자락을 잡아당겼다. “언니, 효성 씨가 이 드레스를 이제는 내가 입었으면 좋겠대요.” 이건 10년 전 그 웨딩드레스를 고쳐 만든 드레스였다. 나는 오늘 일부러 이 드레스를 입었다. 박효성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어리석게도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효성은 결혼기념일에 자기 아내의 옷을 사람들 앞에서 벗겨서 애인에게 입히려고 했다. 모두의 경멸 어린 시선 속에서, 나는 박효성에게 10년 만에 처음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박효성, 우리 이혼해.” 제1화 남편이 결혼기념일 당일에 100번째 애인을 데리고 들어온 그날,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박효성, 우리 이혼하자.”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더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내가 방금 올해 최고의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박 대표님, 사모님 이혼 얘기가 이번이 몇 번째예요?” “100번 채우셨네. 기념회라도 열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효성의 눈빛은 차가움에서 경멸로 바뀌었다. 박효성이 한 걸음 다가와서 내 턱을 움켜쥐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느낌이었다. “이혼?” 박효성은 비웃었다. “소지윤, 이 연극도 10년째인데 안 질려?” “네 엄마를 시켜서 나한테 약을 먹이고 내 침대에 기어들어 온 여자가 이혼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어?” “나 같은 호구가 아니었으면 네 엄마는 당장에 죽었어!” 또 그 죄명이었다. 10년째 박효성은 여전히 내가 어머니를 시켜서 약을 먹였고, 그의 첫사랑 임정은과의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내 침묵은 죄책감으로 받아들여졌다. 박효성은 냉소를 흘리며 손을 거두었다. 남자의 옆에서 임정은을 빼다박은 이진아가 눈치 빠르게 손수건을 건넸다. 박효성은 방금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 듯 손끝을 닦아냈다. “진아가 피곤하니, 제일 좋은 방을 내줘. 그리고 진아에게 어울리는 옷도 준비하고.” “알았어.” 내 목소리는 담담했다. “안방 옆 게스트룸은 어때? 지금까지 99명 모두 그 방을 썼어.” 박효성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나는 그 표정을 잘 안다. 내 대답이 박효성이 예상한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때마다, 나에 대한 혐오가 얼굴에 떠오르곤 했다. “흥.” 박효성이 냉소를 흘리며 이진아의 허리를 감쌌다. “알아서 해. 진아 마음에 들면 됐어. 진아가 제대로 된 옷을 못 가져왔어.” “네 드레스룸에 있는 안 입은 한정판 몇 벌하고 장신구함에 있는 블루 다이아 세트도 진아한테 줘.” 박효성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을 훑어보며 악의를 더했다. “그리고 지금 입고 있는 그 옷도 당장 벗어. 진아가 그 디자인이 마음에 든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멎었다. 옷과 장신구를 빼앗는 것만으로도 극도의 모욕인데, 이제는 내 몸에 걸친 특별한 의미가 담긴 이 드레스까지 사람들 앞에서 벗기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내 존엄을 완전히 짓밟아서 진흙탕에 처박는 행위였다! 이진아는 맞장구를 치듯이 입술을 깨물며, 수줍고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내 치맛자락을 만졌다. “그래.” 나는 선뜻 대답하고 어깨끈을 잡았다.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비명이 채 터지기도 전에, 내 손가락은 등 뒤의 후크로 향했다. “됐어!” 박효성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면서 내 손목을 확 잡아챘다. “소지윤, 너 진짜 뻔뻔하네. 당장 들어가서 갈아입어!” 박효성이 나를 세게 밀치자, 나는 비틀거리며 뒤에 있던 샴페인 탑에 부딪혔다. 차가운 샴페인과 유리 파편이 뒤섞여 살갗을 파고들면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눈을 감았다 떴지만, 내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알았어.” 예상대로 억눌린 비웃음이 잘 차려입은 하객들 사이로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돈 때문에 정말 뻔뻔하네... 감히 이혼을 입에 올려?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와?” “사모님? 가사도우미만도 못하잖아!” “듣자 하니 저 여자 엄마는 약골이라 박 대표가 다 먹여 살린다던데, 어쩐지 그렇게 참더라...” 칼날 같은 수군거림이 내 귓전을 갈랐다. 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이것이 정말로 내 100번째 이혼 요구였다는 것을. 그리고 통장에는 어머니를 데리고 이곳을 떠날 수 있을 만큼의 돈이 모였다는 것을. 깊은 밤, 안방에서 야릇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안방 문 앞에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박효성이 정한 규칙이었다. 새 애인이 ‘말을 안 들으면’, 내가 가서 가르친다. 앞의 99명, 모두 내가 직접 가르쳤다. 박효성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진아의 허리 진짜 부드러워... 소지윤! 옷장 서랍에 있는 그것 좀 가져와!” 밖에 서 있던 나는 손발이 얼어붙은 채, 문을 열고 옷장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내 실크 잠옷을 입은 이진아는 도발적으로 웃고 있었다. 박효성은 침대 머리에 기대 담배를 피우며, 조롱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서랍을 열자, 박효성이 말한 ‘그것’이 들어 있었다. 나는 체념한 듯 손을 뻗었다. 손끝이 서랍에 막 닿으려는 순간, 가운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인화 병원 긴급 호출!] 순식간에 한기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지윤 씨,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다급했다. [사모님께서 다발성 장기 부전이 왔습니다! 에피네프린을 세 차례 투여했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엄마!”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더 이상 체면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나는 무릎으로 기어가서 박효성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제발 기사님 좀 보내줘. 인화 병원으로 가야 해! 우리 엄마가... 의사가 위급하대...” 나는 횡설수설하며 눈물을 쏟았다.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다. “그래? 마지막으로 얼굴 보러 가는 거야?” 박효성이 비웃으며 나를 뿌리쳤다. “네 수법도 참 다양하구나. 낮에는 이혼 연기하더니, 밤에는 또 이런 식으로 난리를 쳐? 내 관심을 끌려고 네 엄마까지 죽는다고 저주하는 거야?” “진짜야! 전화 받아봐!” 나는 바닥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면서, 몸부림치듯 일어섰다. “제발, 차 키만 줘도 돼!” 이진아는 내 미친 듯한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박효성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박효성은 이진아의 등을 다독였다. 다시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완전한 혐오만이 남아 있었다. “됐어, 그만해. 내 흥을 깨는 게 오늘 밤 네 목적이었어? 정말 역겹네! 유 집사!” 유 집사가 급히 달려왔다. “저 여자 지하실에 가둬! 정신 좀 차리게! 내 허락 없이는 내보내지 마!” 제2화 지하실은 축축하고 음습했다. 나는 차가운 철문에 몸을 붙인 채, 공포로 몸을 심하게 떨었다. “내보내 줘! 우리 엄마가 정말 위험하다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두드렸다. 주먹이 터져 피가 났고, 결국 주저앉은 채 소리 내어 울었다. 휴대폰 배터리도 완전히 방전되었다. 의사가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어머니께 약속했다. 돈을 충분히 모으면, 박효성을 떠나 엄마와 함께 따뜻하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편히 살겠다고. ‘왜 하필 오늘이야? 왜 박효성은 확인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거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고등학교 미술실에서 해바라기 꽃잎에 클라인 블루를 칠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은 나를 색맹이라며 비웃었고, 지나가던 박효성만이 걸음을 멈췄다. “이거 달빛 속에 사는 해바라기야? 너도 ‘미드나잇 선’ 좋아해?” 박효성의 손끝이 그 파란색 위에 닿았다.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며 웃었다. 햇살이 박효성의 미소 위에 내려앉았다. “그린 사람처럼 고독한 아름다움이네.” 그 순간의 두근거림이, 내 10년 악몽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박씨 가문의 연회가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박효성의 침대 위였고, 온몸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박효성은 내 목을 조르며 웃었다. “너희 모녀 정말 독하네. 감히 나한테 약을 먹여?”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술잔은 박씨 가문에서 어머니에게 건넨 것이었다. 박씨 가문은 말 잘 듣는 꼭두각시 며느리가 필요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박효성의 곁을 맴돌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나는 웅크린 자세를 유지한 채, 머릿속의 기억을 맴돌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1시간이었을 수도, 혹은 밤새였을 수도 있다. 지하실 문이 열렸을 때, 하늘은 이미 완전히 밝아 있었다. 박효성이 역광을 등지고 서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었어?” 이진아가 박효성의 팔에 매달려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효성 씨, 화내지 마세요. 어떤 사람들은 불쌍한 척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병원 쪽은 아무 일 없어.” 박효성이 비꼬듯 말했다. “유 집사 말로는 한밤중에 귀신 울음소리처럼 울부짖으며 재촉하는 전화는 없었다고.” 나는 고개를 확 들었다! 전화가 없다는 것... 그게 진짜 비보였다! 나는 예전에 풀려났을 때처럼 곧바로 움츠러들어 일어나 뒤처리를 하거나, 비굴하게 사과하며 해명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눈이 빛에 적응하자, 비로소 문 앞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시선이 마주쳤다. 내 몸의 드레스는 먼지와 술로 얼룩져서, 웨딩드레스였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눈빛은 조용한 호수처럼 고요했다. 박효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럽게 호통을 쳤다. “얼른 안 와? 거기서 멀뚱히 서서 뭐 하는 거야?” 나는 벽을 짚으면서, 굳어서 마비된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다리가 바늘로 찌르는 듯 저렸다. 박효성의 옆을 지나칠 때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키.” 박효성이 내 팔을 붙잡았다. “또 무슨 짓이야?” “차 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키 줘. 병원에 가야 해.” 이진아가 박효성의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저 여자 아직도 저렇게 제멋대로예요...” “내버려둬.” 박효성이 냉소하며 손을 놓았다. “강 기사, 따라가.” 강 기사의 차는 나는 듯이 도로를 달렸다. 차가 멈추자마자, 나는 문을 열고 중환자실 복도로 비틀거리며 뛰어갔다. 간호사는 나를 보자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야 오셨네요... 사모님께서 밤새 버티시다가, 임종할 때까지 계속 지윤 씨 이름을 부르셨어요. 손도 계속 문 쪽으로 뻗고 계셨고...” 나는 이를 악문 채, 폐부에서 쥐어짜 낸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에게 데려가 주세요.” 영안실의 형광등은 창백했다. 흰 천을 걷자, 엄마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틀 전만 해도 우리는 바닷가 펜션 홍보 영상을 함께 보면서, 퇴원한 뒤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을 끓여 주겠다고 웃으면서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엄마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미간은 깊게 찌푸린 채,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사망 시각이 언제예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어젯밤 새벽 4시 23분입니다.” 간호사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열 통도 넘게 전화를 드렸는데...” 바로 내가 지하실에 갇혀 목이 터져라 울던 그 시간이었다. 엄마의 찌푸려진 미간을 조심스럽게 펴 드린 뒤, 허리를 숙여서 차가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 우리 곧 자유로워질 거예요.” 제3화 별장에 돌아왔을 때, 안방에서는 음탕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의 웃음과 박효성의 낮은 숨소리가 뒤섞여, 간간이 낮은 신음과 애원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나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서 준비해 둔 여권과 은행 카드를 챙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마침 이진아를 끌어안고 안방에서 나오던 박효성과 마주쳤다. “어머, 벌써 돌아왔어요?” 이진아가 짐짓 놀란 척했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또 어디 가세요?” 박효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내 짐을 노려봤다. “어디 가?” “여기서 떠날 거야.” 나는 현관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멈춰!” 박효성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네 엄마가 너를...” “돌아가셨어.” 나는 담담하게 말을 끊었다. “어젯밤 당신이 나를 가둬뒀을 때 숨을 거뒀어.” 이진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이젠 자기 엄마까지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거예요?” 박효성의 눈빛이 음산해졌다. “너...” “비켜.” 나는 박효성의 손을 뿌리쳤다. “효성 씨, 화내지 마세요.” 이진아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비웃었다. “엄마가 진짜 죽었으면 오히려 그게 해방 아닌가요?” “효성 씨 피를 빨아먹으며 연명하던 늙은 약골이, 당신처럼 더러운 수단으로 남자 침대에 올라타는 딸이나 키워 놨으니 진작에 죽었어야죠!” “입 닥쳐!” 나는 고개를 돌리며, 칼날 같은 시선을 이진아에게 쏘았다. “넌 우리 엄마를 입에 올릴 자격 없어!” “왜 없어요?” 이진아가 목소리를 높이며, 손가락이 내 코끝에 닿을 듯이 들이댔다. “남자한테 약 먹이고 딸을 침대에 보내는 늙은 천박한 년이 낳은, 불쌍한 척 순정 연기하며 남자 돈이나 뜯어먹는 더러운...” 짝! 따귀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이진아는 뺨을 감싼 채, 눈이 튀어나올 듯이 눈을 부릅떴다. 놀람 뒤에는 뒤틀린 원한이 서렸다. “아!” 이진아가 비명을 질렀다. “네가 감히 나를 때려! 이 더러운 것!” 나는 옆으로 비켜서며 손을 힘껏 뿌리쳤다! “아!” 이진아는 내가 손을 뿌리치자 휘청거리다가, 발목을 삐끗하며 옆의 자단목 장식장으로 쓰러졌다. 이진아의 가느다란 팔이 장식장 모서리에 세게 긁혔다. 순식간에 살갗이 찢어지면서 피가 터져 나왔다. 피가 카펫과 벽지에 튀었다. “살려줘! 아파! 내 팔!” 이진아는 바닥에 쓰러져 상처를 감싼 채, 나약하게 비명을 질렀다. “소지윤!” 박효성은 곧바로 이진아를 등 뒤로 감싸면서 나를 노려봤다. “자기가 더러운 짓을 해 놓고, 남이 뭐라고 하니까 찔려?” 나는 박효성을 차갑게 바라봤다. “나는 이진아를 밀지 않았어.” 박효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성이 분노에 완전히 잠식된 채, 달려온 집사와 가사도우미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저 여자 방에 있는 거 전부 태워! 가고 싶으면 멀리 가버려. 이 집 물건은 하나도 가져가지 마!” 불길이 마지막 사진 한 장까지 삼킬 때도, 나는 가만히 바라봤다. 마음속에는 오직 해방감만 남아 있었다. 10년의 청춘, 정말 깨끗하게 타 버렸다. “당장 사과해!” 박효성이 내 턱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내 눈빛을 본 순간 박효성은 멈칫했다. 나는 박효성의 손을 쳐내고 몸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박효성이 뒤에서 고함을 질렀다. “소지윤! 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생각하지 마!” 나는 손에 쥔 비행기표를 꼭 쥐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3일 후, 팔에 두꺼운 깁스를 한 이진아를 데리고 병원에서 돌아온 박효성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라면 박효성이 돌아오면, 아무리 늦은 밤이어도 주방에 곧바로 불이 켜지고 따뜻한 국물이 곧장 그의 손에 올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몇몇 가사도우미들만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가 다시 들어갔을 뿐이었다. “효성 씨, 좀 앉으세요.” 이진아가 애교를 부리며 박효성에게 기댔다. “피곤하시죠? 제가 주물러...” “유 집사!” 박효성이 짜증스럽게 이진아의 말을 끊었다. “소지윤 어딨어? 내려오라고 해!” 유 집사가 빠르게 다가와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은 집에 없습니다.” “없다고?” 박효성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정말 도망쳤어? 전화해, 당장 기어 오라고!” “연락이 안 됩니다.” 유 집사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사모님 휴대폰은... 엊그제 나가실 때 서재 책상 위에 두고 가셨습니다.” 유 집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서명된 이혼 합의서도 있습니다.” 박효성의 눈빛이 순간 음산해졌다. 박효성은 성큼성큼 위층으로 올라가서 서재 문을 발로 차 열었다. 쓰던 휴대폰은 이혼 합의서 옆에 놓여 있었다. 이혼합의서에는 또렷하게 ‘소지윤’이라고 서명이 되어 있었다. “흥, 제법 배짱이 좋아졌네.” 박효성이 냉소를 내뱉었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점점 더 거세졌다. 박효성은 화풀이로 책상 서랍을 강하게 걷어찼다. 큰 소리와 함께, 잠겨 있던 서랍이 충격으로 튕겨 열렸다. 그 안에는 오래된 일기장 한 권이 고이 놓여 있었다. 박효성은 무심코 집어들고 쓰레기통에 던지려다가, 위에 적힌 글자를 보고 멈칫하며 펼쳐 들었다. [2010.5.20 맑음] [너무 이상해. 효성이는 원래 싸움을 싫어하는 모범생인데,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 주먹을 휘둘렀어.]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그린 해바라기가 예뻐서래. 그림을 건넸을 때 물감이 소매에 묻었는데... 그래도 웃었어.] [2015.3.12 흐림] [우리 사귀기 시작했어! 그냥 효성이 집에서 정한 맞선 자리 회피를 위해서지만, 그래도 너무 기뻐.] [2015.3.15 가랑비] [결혼식 사흘째, 효성이는 여전히 차가워. 임정은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진심과 노력이 얼음장도 조금은 녹일 수 있겠지?] [2020.9.3 폭우] [효성이 위가 또 아파. 가사도우미들도 서재에 못 들어가게 하는데, 내가 몰래 죽을 문 앞에 두고 왔어. 효성이는 한입 먹더니 나한테 천박하다고 욕을 했어.] [2021.9.10] [효성이는 세 번째 ‘임정은’을 데려왔어. 자신을 어떻게 모시는지 가르치래. 가르쳤어. 효성이는 아주 만족해하면서 나한테‘눈치 있다’고 칭찬했어.] [2022.12.25 눈] [크리스마스, 술에 취한 효성이 나를 끌어안고 임은정이라고 불렀어. 못 들은 척하고 숙취 해소차를 끓였어. 효성이내 옷에 토해서 새벽까지 치웠지.] [엄마가 오늘 또 각혈을 했어. 병원비 청구서... 박효성,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2025.10.8 흐림] [10년째야, 엄마 각혈이 더 심해졌어. 의사가 상태가 아주 안 좋다고 했어.] [박효성이 오늘 또 ‘임은정’을 데려왔어. 지금까지 데려온 여자들 중 누구보다 많이 닮았어.] [조금만 더 참자, 돈 거의 다 모았어. 엄마 모시고 여길 떠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마지막 장, 날짜는 3일 전이었다. [2025.10.10] [이생에서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말도 안 돼...” 박효성은 목이 조여 오는 듯했다.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박효성은 일기장을 덮으면서 날카롭게 소리쳤다. “차 대! 인화 병원으로 가! 설마 자기 엄마를 버릴 리가 없지!” 유 집사가 들어오면서, 병원에서 막 도착한 통지서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윤 씨 어머니는 정말로 돌아가셨습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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