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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떤 약속도 믿지 않는다
결혼식 하루 전날, 남편 고연준이 갑자기 말했다. “결혼식 일주일만 미뤄. 나 출장 가야 해.” 나는 남편의 무심한 모습을 바라보며, 어젯밤 그의 비서가 보냈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고 대표가 결혼 전에 나랑 같이 세계여행 한번 다녀오고 싶대. 괜찮지?] 나는 남편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말없이 결혼식을 취소했다. 다음 날, 고연준과 소윤지는 에펠탑 아래에서 뜨겁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나는 홀로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웠다. 사흘째 되는 날, 고연준과 소윤지는 부르즈 할리파의 통유리창 앞에서 서로에게 솔직해졌다. 그때 나는 고연준의 어머니에게 이제 고연준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알렸다.
챕터 (1)
第1章
결혼식 하루 전날, 남편 고연준이 갑자기 말했다.
“결혼식 일주일만 미뤄. 나 출장 가야 해.”
나는 남편의 무심한 모습을 바라보며, 어젯밤 그의 비서가 보냈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고 대표가 결혼 전에 나랑 같이 세계여행 한번 다녀오고 싶대. 괜찮지?]
나는 남편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말없이 결혼식을 취소했다.
다음 날, 고연준과 소윤지는 에펠탑 아래에서 뜨겁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나는 홀로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웠다.
사흘째 되는 날, 고연준과 소윤지는 부르즈 할리파의 통유리창 앞에서 서로에게 솔직해졌다.
그때 나는 고연준의 어머니에게 이제 고연준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알렸다.
제1화
“지연아, 연준이 걔가 그냥 일이 너무 바쁜 모양이야.”
“돌아오면 내가 꼭 한마디 해서 너한테 사과하게 할게.”
손톱을 손질하는 데만 정신이 팔린 시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시어머니에게는 내가 어떻게 나오든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이까지 생겼으니까.
소윤지의 존재는 오히려 무척 반가워했을 것이다.
소윤지는 나보다 먼저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살갑게 굴었으니까.
반면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나는, 어쩌면 그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이를 낳아주는 도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쓸쓸하게 웃으며 조용히 자리를 떴다.
“이미 연준 씨하고 소윤지를 이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시어머니는 내가 나가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한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연준이는 회사 대표잖니.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자랑 어울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다 앞으로의 너희 가정을 위해서 하는 일이야.”
“너도 이해를 좀 해야지. 설사 윤지가 없다고 해도 앞으로 또 다른 여자가 생길 거야. 그때마다 화를 내다가는 네 몸만 상해.”
“지금 너 임신한 몸인데, 연준이 말고 누가 너를 받아주겠어?”
“이건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야.”
시어머니는 혼자 계속 떠들어댔지만, 나는 이미 집에서 나온 뒤였다.
나는 손을 배 위에 살며시 올렸다.
아이가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줄에 묶인 강아지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 사람들이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여기던 그 목줄로부터 나는 곧 벗어날 것이다.
집에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반쯤 잠든 상태에서 고연준이 돌아왔다.
고연준은 나를 품에 끌어안더니 목에 목걸이 하나를 걸어주었다.
“결혼 선물이야. 마음에 들어?”
나는 고개를 숙여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파리에서 사 온 이 목걸이는 정말 예뻤다.
소윤지의 SNS에서 이 목걸이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분명 기뻐했을 것이다.
다만 소윤지의 SNS에는 총 6개의 목걸이가 올라와 있었다. 고연준이 내게 준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가격이 쌌고, 소윤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것이었다.
소윤지는 SNS에서 다른 사람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며 말했다.
[이 3,600만 원짜리 목걸이는 ‘블루 러버’ 덤으로 받은 거야. 연준이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해서 놔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에 버렸을 거야.]
그렇다.
내가 받은 이 목걸이는 수억대가 넘는 거장의 작품 ‘블루 러버’의 덤에 불과했다.
나는 조용히 목걸이를 벗었다.
“소윤지가 싫어하던 덤을 나까지 챙겨주고, 참 성의가 대단하네.”
등 뒤의 고연준이 살짝 굳어지더니,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쩔 수 없는 연기였을 뿐인데, 그렇게 속 좁게 굴 거야?”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너도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 네가 뭘 하든 이제 나랑 무슨 상관인데.”
고연준은 발끈했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 꼭 이렇게 싸워야겠어?”
“이 결혼, 하기 싫다는 거야?”
내가 임신하기 전만 해도, 고연준은 감히 내게 이런 말투로 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연준의 말 속에 숨은 뜻이 분명하게 들렸다.
아이까지 생겼으니 이제 얌전히 말을 들으라는 것, 자신 말고는 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모든 걸 털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고연준이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다음 날 아침, 내가 막 잠에서 깨었을 때 고연준은 이미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제2화
침대 협탁 위에는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
고연준은 늘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조금만 양보해 주면, 나는 결국 그가 내민 계단을 타고 내려올 거라고.
어느새 고연준에게는 그게 당연한 사실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너무 잘해준 탓일 것이다.
너무 잘해줘서, 고연준은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조금은 전혀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고연준을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고연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윤지였으면 엄청 좋아했겠지.”
고연준은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아침 식사를 먹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고연준은 내가 자신을 떠날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결국 소윤지에 대한 질투나 자신의 관심을 끌기 위한 애교일 뿐이라고 여겼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고연준에게 그렇게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였다.
다행히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마취가 풀리자, 나는 병실 침대에 홀로 누워 있었다.
주변의 여자들은 모두 누군가가 곁을 지키고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에 곁에 있는 사람이 다정하게 말을 건넸고, 물도 가져다주면서 하나하나 챙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아픈 아랫배를 부여잡고 혼자 비틀거리며 가야 했다.
그때, 탁자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내가 겨우 다가갔을 때는 전화가 끊기기 직전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팀장의 고함이 쏟아졌다.
[김지연, 너 지금 어디야! 30분 안에 회사로 안 오면 끝이야.]
[방금 고 대표님이 순회 점검을 나왔는데, 회사를 통틀어서 너 하나만 자리를 비웠어.]
[너 때문에 부서 전체 보너스가 다 깎였어. 30분 안에 출근하지 않으면, 이번 달 전 직원의 휴무가 전부 취소돼.]
나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싸늘해졌다.
고연준은 예전에 나를 매일 보고 싶다는 이유로 자기 회사에 넣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년이 지나도록, 회사의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나와 고연준의 관계를 알지 못했다.
오늘 고연준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만두겠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팀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더욱 격하게 화를 냈다.
[네가 소 비서인 줄 알아? 네가 고 대표랑 무슨 사이라도 되는 줄 알아?]
[잘난 척도 정도껏 해. 오늘 무조건 기어 나와.]
[안 그러면 사표 낸다 해도 최소 1년은 붙잡아둘 거야.]
하루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회사로 돌아갔다.
“대표님이 드디어 소 비서하고의 관계를 공개했대.”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동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오늘 대표님 회사 순회하실 때 내내 소 비서 허리를 감싸고 다녔잖아.”
“진짜 어울리지 않아? 멋진 대표님과 사랑스러운 비서의 러브스토리라니.”
바로 그때, 한 동료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내가 더 충격적인 소식 하나 알려줄까?”
모두의 시선이 그 동료에게 쏠렸다.
“뭔데?”
“빨리 말해 봐!”
동료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을 꺼냈다.
“대표님이 결혼식 올린대. 그것도 며칠 뒤에.”
순식간에 사무실이 술렁였다.
“와, 어쩐지 며칠 전에 대표님이 소 비서랑 같이 출장을 가시더라니.”
“너희 소 비서 SNS 못 봤어? 미리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거래!”
분명 고연준이 일부러 나를 회사에 나오게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질투하고 화를 내길 바란 것이다.
그러면 견디다 못한 내가 고연준에게 달려가 떼를 쓰고, 예전처럼 나를 적당히 달래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고연준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사직서를 썼다.
팀장은 흔쾌히 서명했다.
“네가 나가는 게 오히려 잘됐어. 이제 모레 있을 소 비서 생일 파티에 너를 데려갈지 말지 고민할 필요도 없겠네.”
그러더니 일어나 박수를 치며 말했다.
“모레 전 직원 휴무야. 대표님이 전 직원을 소 비서 생일 파티에 초대하셨어.”
퇴사 확인서를 받아 들면서 내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모레는... 내가 한때 그토록 기다리던 결혼식 날이었다.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순간에도 가슴은 칼로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
유산한 뒤 몸이 너무 허약해져서, 나는 도저히 짐을 챙길 힘조차 없었다.
제3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하룻밤만 더 쉬어야 했다.
깊은 밤, 고연준이 돌아왔다.
술 냄새를 풍기며 소윤지를 끌어안고 있었다.
고연준은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보더니 비웃었다.
“나가. 오늘은 여기가 윤지 방이야.”
고연준의 말투는 가사도우미에게 명령하듯 경멸로 가득했다.
소윤지도 사람들 앞에서의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벗어던지고, 야한 란제리 차림으로 계속 고연준의 품에 파고들었다.
“언니, 미안해. 오늘 연준이랑 술을 많이 마셔서 자리 옮기기가 싫어. 언니 침실 좀 빌릴게.”
“아 맞다. 연준이가 언니는 잠자리에서 별로라고 하던데, 여기 남아서 좀 배워 가는 건 어때?”
분노가 나를 집어삼킬 듯 치솟으면서, 몸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고연준은 거만한 눈빛으로 흥미진진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가 화난 것 같은데, 내가 방금 말을 잘못했나 봐.”
고연준은 그 말을 듣고 소윤지를 품에 더욱 꼭 끌어안았다.
“네가 뭘 잘못했겠어. 저 여자는 평소에도 죽은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없잖아. 역시 너랑 내가 더 잘 맞아.”
분노에 휩싸인 나는 몸을 일으킨 뒤, 곧바로 두 사람을 밀치고 방 밖으로 나갔다.
“어머, 언니 힘 진짜 세다.”
소윤지가 교태 섞인 목소리로 살짝 비명을 질렀다.
“허리가 이렇게 굵었구나. 어쩐지 힘이 세더라.”
나는 임신 때문에 굵어진 허리를 내려다보며 마음이 처연해졌다.
고연준은 소윤지를 끌어당기더니 입을 맞추었다.
“그만해. 임신하면 허리가 굵어지는 법이야. 앞으로는 네가 저 여자 대신 나를 만족시켜 줘야지.”
“언니도 참, 나는 도와주려는 건데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오히려 나를 괴롭히네.”
침실 문이 꼭 닫히지 않아서, 곧 헐떡이는 숨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듣고 싶지 않았지만, 몸이 너무 허약해서 하는 수 없이 손님방에 몸을 눕혔다.
두꺼운 벽도 두 사람의 소리를 막아주지 못했다.
난잡한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연준이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목소리에는 욕정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만 화 풀어. 알잖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요즘 네가 너무 차가워서 윤지를 이용해서 널 자극하려고 했을 뿐이야. 윤지에겐 아무 감정도 없어.”
고연준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방금의 난잡한 시간이 고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짜증이 나서 고연준을 밀쳐내려고 했지만, 허약한 몸에는 힘이 없었다.
고연준의 손이 내 몸 위를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능숙하게 내 욕망을 자극하려고 했다.
예전의 나는 고연준에게서 헤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모든 것은 그저 고연준의 욕망일 뿐이라는 것을.
내가 힘없이 저항하자, 그건 오히려 고연준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마침내 고연준은 참지 못하고 나를 눕힌 채로 뒤집어 덮쳤다.
그리고는 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적당히 좀 해.”
나는 얼굴에 퍼지는 화끈한 통증을 느끼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고 대표, 씻고 오지 그래? 술 냄새에다 더러운 여자 냄새까지, 역겨워서 못 자겠네.”
다음 순간, 다시 한번 뺨을 얻어맞았다.
고연준은 내 목을 거칠게 조였다.
“좋게 말할 때 들으라고.”
허약해진 나는 거의 저항할 수 없었다.
고연준은 발정 난 짐승처럼 날뛰며 거칠게 내 저항을 짓밟았다.
아랫배에서 치밀어 오르는 통증에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고연준의 귀를 깨물면서 멈춰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것은 계속되는 따귀였다.
내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고연준은 내 목을 더욱 거세게 움켜쥐었다.
아랫배의 통증과 질식감에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내 울부짖음은 점점 약해졌고, 몸에서는 힘이 빠져나갔다.
그제야 고연준은 정신을 차린 듯 동작을 멈췄다.
고연준의 입술이 몇 번 움직였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방을 나가 버렸다.
나는 한참을 고통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침대 시트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랫배 아래 시트에는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
내 마음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통증은 겨우 가라앉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비행기표를 예매해 두고, 되는대로 옷을 걸친 뒤 아래층 거실로 내려왔다.
제4화
몸이 너무 허약해진 나는 몇 걸음만 걸어도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쉬고 싶었다.
내가 간신히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때, 소윤지가 위층에서 내려왔다.
소윤지는 화려하게 꾸민 채 청순한 생기가 온몸에 넘쳐흘렀다.
반면 내 얼굴은 창백했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허약했다.
우리는 분명 나이는 동갑인데, 나는 수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같은 남자를 두고도 이렇게나 극명하게 달랐다.
소윤지는 나를 보자마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뭐야, 아직도 여기서 고 대표가 달래주길 기다리는 거야?”
“고 대표는 출근했어. 할 말 있으면 내가 특별히 대신 전해줄까?”
나는 소윤지를 무심하게 훑어보았다.
왜 소윤지마저 내가 그저 떼를 쓰고, 고연준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일 뿐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네가 고연준 일까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어?”
내가 차갑게 입을 열자, 소윤지는 오히려 득의양양해졌다.
“당연하지. 나는 고연준의 비서이자 연인이야. 일이든 사랑이든 욕망이든, 내가 뭐든 다 채워줄 수 있어.”
“너는 그저 애나 낳는 도구일 뿐이고.”
나는 소윤지를 무심히 훑어보았다.
“머지않아 너처럼 누군가가 네 자리를 대신할 거야.”
그 말을 들은 소윤지는 배를 잡고 웃었다.
“너와 나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알아?”
“나는 고연준에게 여자가 부족하지 않다는 걸, 아무도 고연준과 평생을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거야.”
“너 같은 멍청이만 연준과의 남은 인생을 상상하지.”
“정신 차려. 너 못생긴 데다 몸매도 별로잖아. 매일 무슨 헛된 꿈이나 꾸고 있는 거야?”
나는 비웃음을 흘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윤지 같은 여자는 내 앞에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었다.
내가 이렇게나 많은 것을 바쳤는데도 돌아온 건 이런 결말뿐이었다.
아마 내 비웃음이 소윤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뭘 그렇게 고상한 척해? 너도 돈과 이익을 바라는 거잖아. 네가 나보다 뭐가 잘났는데?”
“이제 고연준은 내 사람이야. 너는 이미 끝났어.”
나는 비꼬며 말했다.
“그럼 두 사람 백년해로하고, 아이도 빨리 낳길 바랄게.”
소윤지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윤지는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확 잡아당겼다.
문이 열리는 순간, 소윤지는 일부러 뒤로 넘어졌다.
마침 고연준의 시선과 정확히 마주쳤다.
나는 원래 몸이 허약한 데다 갑자기 끌려가는 바람에 바닥에 쓰러졌다.
재빨리 달려온 고연준이 나를 지나쳐서 소윤지를 일으켜 세웠다.
소윤지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언니, 알겠어. 나 이제 갈게.”
서툰 연기에는 온통 허점이 보였다.
하지만 고연준은 순식간에 소윤지를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띠면서, 나를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사과해.”
나는 말없이 몸을 일으켜 캐리어를 끌고 나가려고 했다.
고연준은 화가 나서 내 팔을 붙잡았다.
“내가 하는 말 안 들려? 사과하라고! 잘못을 저질러 놓고 도망가려고? 너 정말 나를 실망시켰어.”
나는 차갑게 돌아섰다.
“소윤지가 나를 모함했는데, 당신은 나더러 사과하라고 해?”
고연준은 완전히 분노해서 내 뺨을 후려쳤다.
“이제 그만 좀 해! 결혼 안 할 거야?”
나는 고개를 돌리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눈빛으로 고연준을 바라보았다.
“이 결혼, 안 해도 그만이야.”
고연준은 마치 불을 뿜을 것처럼 두 눈이 벌겋게 변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 뱃속에 아직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참아주지도 않았어.”
“하지만 계속 이 일로 나를 협박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나는 얼굴 가득 눈물이 흘러내리는 채로 웃었다.
‘그래... 지금까지 고연준의 자신감은 바로 이거였지.’
내 웃음에 고연준의 눈빛에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 스쳤다.
이내 표정이 부드러워진 고연준이 다가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곧바로 말을 끊었다.
“됐어. 아이는 이미 없어. 이제 당신도 더 이상 나를 참아줄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