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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라진 뒤에야 찾아온 후회
동생과 약혼녀가 죽은 지 6년째 되던 해, 나도 내 무덤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묘를 찾으러 가기 전, 엄마가 불쑥 입을 열었다. "민재야, 올해는 가지 않아도 돼. 사실 두 사람은 죽지 않았어."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생 방에서 걸어 나왔다. 송지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옆에 선 윤지아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내기에서 이겼지? 형은 영원히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 "이제 누가 위야? 응? 지아야?" 말이 끝나자, 내가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울던 여자가 이제는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휴, 그냥 민재가 너무 멍청했던 거야. 우리가 바로 옆집에 살았는데도 몰랐잖아." 엄마가 동생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건 두 사람을 떠올리면 슬플까 봐서가 아니었다. 그 방이 옆집과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죽기 한 달 전까지도 두 사람의 묘를 찾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챕터 (1)
第1章
동생과 약혼녀가 죽은 지 6년째 되던 해, 나도 내 무덤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묘를 찾으러 가기 전, 엄마가 불쑥 입을 열었다.
"민재야, 올해는 가지 않아도 돼. 사실 두 사람은 죽지 않았어."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생 방에서 걸어 나왔다.
송지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옆에 선 윤지아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내기에서 이겼지? 형은 영원히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
"이제 누가 위야? 응? 지아야?"
말이 끝나자, 내가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울던 여자가 이제는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휴, 그냥 민재가 너무 멍청했던 거야. 우리가 바로 옆집에 살았는데도 몰랐잖아."
엄마가 동생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건 두 사람을 떠올리면 슬플까 봐서가 아니었다. 그 방이 옆집과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죽기 한 달 전까지도 두 사람의 묘를 찾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제1화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떨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붉어진 눈으로 물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윤지아의 눈에는 더 이상 다정함이라곤 없었다. 차가운 눈빛뿐이었다.
"민재야, 네가 너무 철이 없어서 그래."
대체 어떻게 해야 철이 든 것일까.
엄마도 미간을 찌푸리고 나를 바라봤다.
"지난 몇 년은 네 버릇 좀 고치려고 그런 거야. 자꾸 지훈이 걸 빼앗으려 하지 마."
"민재야, 두 사람은 이미 아이까지 생겼어. 이제 그만 놓아 줘. 너도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이제 그럴 일은 없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가슴 깊은 곳까지 저려 왔다.
"저는 지훈이 걸 빼앗은 적 없어요."
목이 메었지만 끝까지 말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늘 지훈이가 좋아하는 것만 기억했다. 나는 억지로 지훈이와 같은 걸 좋아해야 했다.
그래야 그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나눠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들 눈에는 '나도 갖고 싶다'는 말조차 동생의 것을 빼앗는 일이었다.
사춘기 때 나는 지훈이보다 10센티미터나 컸다.
하지만 엄마는 늘 지훈이 치수에 맞춰 옷을 샀다. 몇 번을 말해도 내 치수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 옷과 바지는 늘 어중간하게 짧았다.
그 탓에 몇 년이나 놀림을 받았다.
'진작 알아챘어야지, 송민재. 저 사람들은 널 사랑하지 않아.'
내 표정이 너무 처연해 보였던 걸까.
윤지아의 차가운 얼굴이 잠시 누그러졌다. 그녀는 내게 휴지를 건넸다.
"민재야, 이제 앞만 보고 살아."
나는 답하지 않았다. 지훈이 가식적인 죄책감을 내비치며 말했다.
"형, 내가 미안해. 아직 지아랑 혼인신고도 안 했으니까 형한테 돌려줄게."
그 순간 엄마가 손을 들어 내 뺨을 때렸다.
뺨이 화끈거리고 아팠다.
믿을 수 없어 엄마를 바라봤다. 손은 가늘게 떨렸지만 목소리는 차가웠다.
"송민재, 대체 무슨 행패야? 지아 임신했는데, 아이까지 너처럼 수치스러운 존재로 만들 셈이니?"
나는 얼어붙었다. 가슴이 조여 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엄마는 나를 결혼 전에 가졌다.
엄마 눈에 나는 혼전 임신으로 생긴 수치였다.
아빠에게 나는 엄마와 결혼하도록 몰아붙이는 수단이었다.
나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성적도 늘 좋았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잘하면 부모님도 날 좋아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내가 뭘 해도 소용없다는 걸.
그들이 바란 건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 바람은 곧 이루어질 터였다.
윤지아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눈에는 안타까움이 어렸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민재야, 우리 친구로는 지낼 수 있잖아. 나랑 지훈이가 잘 챙겨 줄게."
나는 손길을 피해 홱 뒤로 물러났다.
"건드리지 마."
목소리는 메마르고 쉬어 있었다.
6년.
무려 6년이었다.
한순간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마다 명절이나 기일이 되면, 묘비 앞에서 몇 번이고 용서를 빌며 후회했다.
두 사람이 나를 놀라게 해 주려고 하다가 죽었다고 믿었으니까.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니.
심지어 부모님마저 지훈이의 행복을 위해 나를 속였다.
엄마를 바라보며 이미 답을 아는 질문을 꺼냈다.
"지훈이 방에 못 들어가게 한 게 슬퍼질까 봐서가 아니라, 옆집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였죠?"
엄마의 낯빛이 살짝 변했다. 시선을 피하면서도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뭐? 다 널 위해서였어. 미련을 완전히 끊고 제대로 살라고."
"제대로 살라고요?"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목소리는 한없이 서글펐다.
"해마다 바보처럼 묘를 찾고 죄책감과 그리움 속에서 사는 날 보면서, 두 사람은 옆집에서 행복하게 사랑하고 있었잖아요. 그게 절 위한 거였어요?"
"송민재,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마침내 아빠가 서재에서 나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네가 상처받을까 봐 죽은 척까지 한 거야. 몇 년을 숨어 지내며 고생했는데, 대체 뭘 더 바라는 거냐?"
서로 사랑해서.
그들이 고생했다니.
그 두 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마침 휴대전화에 추모공원 예약이 완료됐다는 알림이 떴다.
몇 년 전 수색 현장에서 발견된 반지를 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차분히 말했다.
"다시는 말썽 부리지 않을게요."
제2화
이튿날, 추모공원에서 보내 온 생체 신호 모니터링 밴드를 받았다.
이 밴드는 내가 죽은 뒤 두 시간 안에 자동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사람이 와서 사후 수습을 해 준다고 했다.
잘됐네.
문득 6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윤지아와 내 약혼식 날이었다.
윤지아는 나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다.
나는 긴장과 기대를 안고 식장에서 기다렸다.
해가 지도록 기다린 끝에, 낯선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두 사람이 탄 차가 산 아래로 추락해 완전히 부서졌고 두 사람도 숨졌다고 했다. 수색 끝에 발견된 건 SMJ가 새겨진 반지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는 하늘이 무너진 듯 통곡하다 날카롭게 나를 몰아세웠다.
"다 너 때문이야. 너한테 깜짝 선물을 해 주려다 두 사람이 죽은 거잖아."
하객들까지 나를 손가락질했다.
그날 비는 정말 거셌다. 그 비에 내 평생이 흠뻑 젖어 버렸다.
그런데 이제 와 그 모든 통곡이 나 하나를 속이기 위한 연극이었다고 했다.
그래서였구나. 지훈이가 죽었는데도 집에서는 늘 그가 좋아하던 매운 반찬이 올라왔던 게.
그래서 엄마는 지난 6년 동안 한 번도 묘를 찾지 않았던 거구나.
...
됐어.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게 남은 돈은 전부 추모공원에 지불했다.
이제 나는 여기 머물며 마지막 그림을 마친 뒤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죽음이 다가오는 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밖으로 나가려는데
지훈이 입을 열어 나를 막아섰다.
"형, 나랑 지아가 형이 끓여 준 죽을 먹고 싶어. 어릴 때부터 형이 남 챙기는 건 제일 잘했잖아."
그는 윤지아를 끌어안은 채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제와는 딴판이었다.
윤지아는 지훈의 품에 기대며 자연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지훈이가 먹고 싶다잖아. 네가 가서 좀 끓여 줘. 난 임신 중이라 불편해."
엄마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푹 퍼지게 끓여. 설탕은 넣지 말고. 지훈이는 단 걸 싫어하잖아. 어릴 때부터 사람 챙기는 건 네가 제일 잘했으니 이 정도야 어렵지 않겠지."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지훈은 조금 난처한 척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형, 아직도 나한테 화났어? 내가 잘못했어. 지아랑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 정말 지아를 사랑해... 하기 싫으면 안 끓여도 돼. 내가 안 먹을게. 억지로 하지 마."
그는 가볍게 한숨까지 내쉬며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처럼 굴었다.
윤지아의 얼굴이 곧장 굳었다. 나를 보는 눈에도 불쾌한 기색이 어렸다.
"민재야, 죽 한 그릇 끓이는 게 그렇게 기분 나쁠 일이야? 지훈이는 너보다 어려. 조금 양보하면 안 돼?"
아빠도 신문을 내려놓고 미간을 찌푸린 채 호통쳤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뭘 그렇게 꾸물거려? 가족끼리 뭘 그리 따져?"
가족. 그 말이 유난히 귀를 찔렀다.
천천히 눈을 들어 눈앞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네 얼굴을 훑어봤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 속에서 나만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알겠어요. 제가 끓일게요."
몸을 돌려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 죽 한 그릇으로 부모님이 길러 준 은혜를 모두 갚는 셈 치기로 했다.
지훈은 죽을 먹다 말고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가 모조리 토해 냈다.
나는 멍하니 굳었다.
모두가 지훈에게 몰려가자,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형 탓이 아니야. 내가 몸이 약해서 그런가 봐."
그렇게 말할수록 모두는 내 탓이라 여겼다.
윤지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봤다. 목소리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민재야,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
"어쩌다 이렇게 독해졌어? 친동생한테까지 이럴 수 있어?"
손등에 잡힌 물집을 보니 손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아빠는 화가 나 온몸을 떨며 소리쳤다.
"저놈을 가둬! 잡동사니 방에 처넣고 반성하게 해. 우리 집에서 어떻게 저런 인간이 나왔어?"
엄마는 막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채 한숨만 내쉬었다.
"가만히 생각 좀 해 봐. 이제 그만 고집부리고."
윤지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아빠를 도와 나를 잡동사니 방으로 밀어 넣었다.
쾅. 문이 닫히더니 곧 잠겼다.
아무도 내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비좁고 어두운 공간은 공기가 탁하고 후텁지근했다.
하루 밤낮 동안 물도, 밥도 없었다.
고질병이 완전히 도졌다. 가슴이 비틀리듯 아파 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에 웅크린 채 식은땀으로 옷을 흠뻑 적셨고,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마지막 힘을 짜내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한 번, 또 한 번.
"문 열어 줘... 너무 아파..."
"누나... 엄마... 약 먹어야 해..."
제3화
목소리가 너무 작아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손바닥이 붓고 피가 배어 나올 때까지.
아직 죽을 수는 없었다. 내 그림을 전시장에 보내지 못했으니까.
내 인생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그래도 내 그림만은 깨끗한 액자에 걸려야 했다.
얼마나 두드렸는지도 모른 채 문이 마침내 열렸다.
문 앞에 선 윤지아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바닥에 웅크린 나를 보자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녀는 성큼 다가와 무릎을 꿇고 내 이마에 손을 댔다. 뜨거운 열기에 화들짝 손을 거뒀다.
"열이 났어? 왜 이렇게 뜨거워?"
"약... 내 베개 밑에..."
숨소리처럼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윤지아는 곧바로 일어나 내 좁은 방으로 달려갔다. 약 상자를 찾아 들고 미지근한 물까지 가져왔다.
그녀는 아플까 봐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나를 부축해 앉혔다.
"빨리 먹어. 이거 먹으면 안 아플 거야."
약을 삼키자마자 지훈이 창백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 왜 사람들을 속인 거야?"
"아까 형 방에 가 봤는데, 형이 먹던 건 약이 아니라 비타민이었어..."
"형은 아픈 척하면서 일부러 우리를 걱정시킨 거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 한마디가 얼음물처럼 윤지아에게 막 피어난 연민을 모조리 꺼뜨렸다.
윤지아는 나를 뿌리치며 화를 냈다.
"송민재, 너 정말 미쳤구나. 못 할 짓이 없네."
엄마의 표정도 단숨에 바뀌었다. 실망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반성 좀 하랬더니 아픈 척을 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널 낳지 말았어야 했어!"
아빠가 화가 나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구제불능이야.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지고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그만해!"
윤지아가 말을 잘랐다. 목소리에는 피로가 잔뜩 배어 있었다.
"더는 네 핑계 듣고 싶지 않아."
"송민재, 너한테 정말 실망했어."
그날 이후 우리는 더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어느 날, 막 그림을 전시장으로 부치고 나자 추모공원에서 메시지가 왔다.
[송민재 고객님, 생체 신호 모니터링 결과 최근 생체 신호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각별히 유의해 주십시오.]
나는 짧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설마 이 세상에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내 시신을 수습해 줄 사람뿐일 줄이야.
제4화
오후,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고 있었다.
지훈이 다가오더니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형, 정말 낯짝도 두껍다. 다들 형을 이렇게 싫어하는데 아직도 이 집에 붙어 있고 싶어?"
나는 대꾸하지 않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자 그가 내 손목을 꽉 붙잡고 악마처럼 귓가에 속삭였다.
"형은 모르지? 사실 지아는 지난 몇 년 동안 형을 잊은 적이 없어. 휴대전화에는 둘이 찍은 사진만 가득하던데."
가슴속에 잠깐 놀라움이 스쳤다. 그때 지훈이 말을 이었다.
"형이 정말 미워. 형, 그냥 죽어 버리면 안 돼?"
갑자기 지훈이 힘껏 나를 베란다 밖으로 잡아당겼다.
그러다 자신도 중심을 잃고 말았다.
우리는 동시에 바닥으로 넘어졌다.
균형을 잃은 내 몸 절반이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몰아치고 발밑은 허공이었다. 조금만 더 움직여도 추락해 산산조각 날 판이었다.
지훈은 당황한 얼굴로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
"살려 줘! 형이 나를 밀려고 해!"
거실에 있던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쳐나왔다.
세 사람은 곧장 지훈에게 달려갔다. 더 위험한 처지에 놓인 나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지훈의 곁을 에워싸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상태를 살폈다.
"지훈아!"
윤지아는 지훈을 꽉 끌어안았다. 눈에는 놀란 기색과 안쓰러움만 가득했다.
엄마는 지훈을 바라보며 금세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아빠는 화가 나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거칠게 욕을 퍼부었다.
"송민재, 이 독한 놈아! 대체 어떻게 해야 지훈이를 그만 괴롭힐 거냐?"
몸 절반이 허공에 매달린 채였다. 바람 때문에 눈도 뜰 수 없었고, 팔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아팠다.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누나..."
윤지아가 마침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망설이던 그녀가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는 순간, 엄마가 그 손을 쳐 냈다.
"지아야, 쟤는 사람까지 죽이려 한 놈이야. 그냥 저대로 두고 반성하게 해!"
윤지아는 잠시 망설이다 내게 뻗었던 손을 거뒀다.
이미 예상했던 결과인데도 눈시울이 시큰해지고 가슴까지 아파 왔다.
한편이 되어 나를 적대하는 네 사람을 올려다보는 순간, 문득 모든 미련이 사라졌다.
"제가 죽어야만 저를 믿어 주실 거예요?"
말을 마친 나는 스스로 손을 놓고 추락하는 몸을 그대로 내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