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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란히 걸었을 뿐
황실 제사를 앞두고, 도성에는 두 가지 소문이 자자했다. 하나는 공주 배서령이 화친한 지 오 년 만에 갈라져 돌아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방의 잃었던 땅을 수복하고 큰 공을 세운 진북 장군 강묵호가 황제의 특별 허락을 받아 황실 제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약혼한 사이였으나, 그해 화친 교지로 인해 억지로 갈라서야 했다. 하나는 북쪽 이민족의 땅으로 먼 길을 떠났고, 하나는 변방을 지키며 살았으니, 도성 백성들은 모두 애석해했다. 백성들은 틈만 나면 이 두 사람이 오 년 만에 다시 만나니 예전의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 수군거렸다. 술집과 길목에서는 이들의 지난 이야기가 오가며 운명에 갈라진 인연을 애석해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인이 밖의 소문을 전해 주었을 때, 나는 막 강묵호를 모시고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몸에는 아직도 붉은 자국이 선명했으나, 나는 숨이 멎을 듯 가슴 한복판이 저리게 아팠다.
챕터 (1)
第1章
황실 제사를 앞두고, 도성에는 두 가지 소문이 자자했다.
하나는 공주 배서령이 화친한 지 오 년 만에 갈라져 돌아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방의 잃었던 땅을 수복하고 큰 공을 세운 진북 장군 강묵호가 황제의 특별 허락을 받아 황실 제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약혼한 사이였으나, 그해 화친 교지로 인해 억지로 갈라서야 했다.
하나는 북쪽 이민족의 땅으로 먼 길을 떠났고, 하나는 변방을 지키며 살았으니, 도성 백성들은 모두 애석해했다.
백성들은 틈만 나면 이 두 사람이 오 년 만에 다시 만나니 예전의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 수군거렸다. 술집과 길목에서는 이들의 지난 이야기가 오가며 운명에 갈라진 인연을 애석해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인이 밖의 소문을 전해 주었을 때, 나는 막 강묵호를 모시고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몸에는 아직도 붉은 자국이 선명했으나, 나는 숨이 멎을 듯 가슴 한복판이 저리게 아팠다.
제1화
‘짝’
이야기꾼이 목탁을 한 번 치며 말했다.
"그해 교지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지.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 다시 만나려 하네."
"자, 그럼 이번 황실 제사에서 두 사람이 재회하는 그날을 지켜보시죠!"
말이 떨어지자, 객석에서는 박수갈채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강 장군과 공주는 정말 하늘이 내려준 짝이었지. 그때 누가 이 인연을 안타까워하지 않았겠어?"
"내가 보기엔, 둘이 다시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야. 뻔한 거지 뭐."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강 장군은 이미 장가들지 않았나? 하 상서 댁 따님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이 나오자, 바로 누군가 받아쳤다.
"무슨 따님이야, 그냥 첩자식일 뿐이지. 공주 시중이나 들었던 게 전부인데, 그걸 발판 삼아 올라간 거야. 강 장군도 그냥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거지. 진짜 주인이 돌아오면 알아서 물러나야지."
나는 이층 별실에 앉아 찻잎이 뜨거운 물 속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젯밤 궁 안에서 막 소식이 나왔는데, 오늘 벌써 온 도성에 퍼졌다.
이 두 사람이 온 도성 사람들이 오 년 동안 안타까워하던 인연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하인이 내려가 꾸짖으려 했다.
나는 손을 들어 막으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버려둬. 사람들 입을 막을 순 없어."
과연 내가 그에게 어쩔 수 없이 고른 상대인지 아닌지는 남들이 정할 일이 아니었다.
다만 강묵호의 눈에도, 나는 그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이 질문은 어쩌면 그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지도 몰랐다.
젊은 시절 강묵호는 도성에 이름난 미남 장군이었고, 수많은 처자들이 꿈꾸는 대상이었다.
그가 말을 타고 거리를 지날 때마다 길 양옆에서는 손수건과 향낭, 연서가 비처럼 떨어졌다.
배서령은 성격이 강해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차갑게 얼굴을 굳히고 며칠씩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녀의 곁에서 함께 글을 익히는 처지였다. 그렇다 보니 두사람 사이에서 말을 전하는 일이 잦았다.
강묵호의 말을 그녀에게 전하고, 또 공주 앞에서 다른 여인들이 보낸 서신을 모조리 태워 그녀의 화를 달래곤 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사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구경꾼이 되어 있었다.
막 저택에 들어서려 할 때, 문지기가 서신 한 통을 건넸다.
"부인, 방금 공주부에서 사람을 보내 전해 드리라 했습니다. 장군님께 드리는 것이라 합니다."
짙은 갈색 서신 겉장에는 가는 금실 문양이 찍혀 있었다.
손끝에 닿는 순간, 배서령이 늘 사용하던 그 차갑고 고귀한 향기가 날 듯했다.
나는 행랑 아래 서서 손끝이 살짝 굳었다.
서신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오 년 동안의 그리움을 적었을까, 아니면 한번 보자고 했을까?
아니면 그냥 안부일 수도 있다.
내가 생각이 너무 많은 걸까?
궁금증에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서신을 뜯을 뻔했다.
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그 마음을 접었다.
나는 배서령이 아니다. 그의 사적인 편지를 뜯을 자격이 없다.
스스로 망신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금의 체면이라도 남기는 것이 나았다.
제2화
나는 밀려드는 감정을 누르고 서신을 탁자 모서리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섰다.
행랑에 걸린 등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안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묵호는 오늘 군영에 당직이라, 내 의문은 당분간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이 밤은 분명 잠들기 어려울 터였다.
이튿날 새벽, 나는 강묵호가 검술을 익히는 소리에 잠이 깼다.
검바람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거칠고 날카로웠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침 안개 속에서 마음을 죄어 왔다.
나는 행랑 아래 서서 그의 하얀 옷자락이 휘날리고 검세가 날카로운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달리 풀어낼 길 없는 조바심이 섞인 듯했다.
나는 다가가지 않고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그가 검을 거두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까지.
그제야 나는 평소처럼 다가가 깨끗한 수건을 건넸다.
그는 말없이 받아 땀을 훔쳤다.
이런 날들이 벌써 삼 년째였다.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배서령이 돌아왔는데, 이제 우리 부부는 어떻게 되는 건지 물어볼까?
아니면 세월이 흘러서 정말 다 잊은 건지 물어볼까?
품은 의문은 하나같이 직설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입밖으로 튀어나온 건 엉뚱한 질문이었다.
"탁자 위에 있던 서신, 읽으셨습니까?"
"보았소."
한마디뿐이었다.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그는 이 이야기를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수년이 지나도록 그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그 한 사람뿐이었다.
잠시 후 그가 갑자기 물었다.
"며칠 있으면 제삿날인데, 함께 가겠소?"
나는 잠시 멈칫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눈빛을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예법대로라면 장군의 부인으로서 나도 함께 갈 수 있었다.
궁중에서 몇 해 글공부를 한 터라 낯선 자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황실의 위엄과 영광은 애초에 나 같은 첩자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남의 눈치를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야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곁에 서서 온 도성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물러나야 할 그 자리'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강묵호가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더 묻지 않고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강요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으며 더 이상의 다정함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듯 느껴졌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나는 여느 때처럼 성 밖 병영으로 음식을 나르러 갔다.
강묵호는 부장과 군무를 논의 중이었다. 얼굴 옆모습은 차갑고 날카로웠으며, 갑옷을 입은 모습은 더욱 위엄이 있었다.
나는 음식을 내려놓고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길에 저잣거리의 죽을 나누어 주는 자리를 지나다가, 멀리 사람들이 모여들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인파 가운데 한 줄기 흰 옷자락이 보였다.
배서령이었다.
오 년 만에 그녀는 소녀 시절의 오기보다는 한층 단아하고 온화해져 더욱 빛나 보였다.
그녀는 직접 국자를 들어 죽을 떠주고 있었다.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모습에서는 금지옥엽의 교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 부드러웠다.
"여러분, 서두르지 마세요. 모두 드실 수 있습니다."
인파 속에서 누군가 높은 목소리로 칭송했다.
"강 장군처럼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 있고 공주처럼 어질고 인자한 분이 계시니,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복이 아닙니까. 두 분은 정말 하늘이 맺어준 한 쌍입니다!"
말이 떨어지자 주변에서 우레와 같은 호응이 터져 나왔다.
배서령은 얼굴에 연한 홍조를 띠며 고개를 숙여 살짝 웃었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나와 강 장군은 마음을 같이하여 백성들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모두가 마음속으로 짐작하던 그 관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듯했다.
누군가 감회에 젖어 말했다.
"당시 강 장군이 화친 행렬을 따라 백 리를 쫓아갔는데 말이 지쳐서 기진맥진했다지. 그런데 다시 공주와 이렇게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게. 그때 우리 세력이 약했기에 어쩔 수 없이 공주를 먼 곳으로 시집보냈지만 강 장군이 그날 이후로 밤낮없이 훈련에 매진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 군사가 튼튼해진 거지."
제3화
배서령은 그 말을 듣고 눈가에 가냘픈 아쉬움이 스쳤다.
"그 말이라면 나도 앞서 서신으로 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시선을 내 쪽으로 흘리는 듯했다.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그 안에는 옛 인연만이 알 법한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그는 답장에 한 치의 땅도 양보하지 않겠고 마음에 둔 사람도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적었습니다."
주변에서는 탄식과 축복이 오갔다.
오직 나만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굳어 있었다. 손끝이 시렸다.
그 서신에는 단순한 안부만 담긴 게 아니었구나.
그가 국경을 지키며 땅을 넓힌 것도 나라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그녀를 당당히 맞이하기 위한 것이었구나.
나는 몸을 돌렸다. 거의 도망치듯이.
치맛자락이 돌바닥을 스치며 다급하게 흩날렸다.
내가 묻지 못했던 그 답을, 배서령의 입에서 듣고 말았다.
나는 원래 남과 다투는 법이 없었다.
다툴 자격도 없었고 감히 다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직 강묵호만은 붙잡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 생각은 어리석은 건지도 모른다. 내가 늘 그래 왔던 고개를 숙이고 따르기만 하던 모습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자꾸 나도 모르게 의문이 들었다.
만약 그가 나에게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을 준 적이 없다면, 이 삼 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저 적당히 채워진 자리였을까?
매달 보름, 내가 서쪽 교외의 정운사로 강묵호의 어머니를 뵈러 가는 날이었다.
강씨 가문에 시집온 지 삼 년 동안, 폭우가 쏟아지고 눈길이 얼어붙은 날에도 나는 한 번도 이 길을 거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처음으로 강묵호 앞에 서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저를 데려다 줄 수 없겠습니까?"
강묵호는 검을 쥔 손을 멈추었다. 분명 내가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가 이 길을 함께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바로 혼인이 정해졌을 무렵이었다.
그 후 삼 년 동안, 나는 언제나 혼자 수레를 타고 오갔다. 한 번도 그를 번거롭게 한 적이 없었다.
오늘 내가 갑자기 부탁을 한 것은, 부인이라는 신분을 빌려 단 한 번 특별한 대접을 받아 보려는 마음에서였다.
그의 마음속에 내가 조금이라도 예외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내 기대 어린 눈빛을 피했다.
"오늘은 병사를 점검하고 제사에 따를 의장대를 정비해야 하오. 겨를이 없군. 다음에 함께 가겠소."
나는 시선을 내리고 가볍게 답했다.
이 순간 갑자기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나는 배서령과 견주려는 한심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늘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리고 한 번 정한 일은 절대 바꾸지 않는 이 남자에게 나를 위해 한 번만이라도 예외가 되길 바랐던 것이다.
젊은 시절의 기억이 밀려왔다.
그때의 강묵호는 이렇게 냉담하고 무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스승님 몰래 학당을 빠져나가고 궁녀 차림을 한 배서령을 데리고 저잣거리 구경을 나가기도 했다.
그는 병영 훈련을 반 시진 일찍 끝내고 동서쪽 시장을 누비며 그녀가 좋아하는 계화 떡과 유리구슬을 찾아다녔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그 물건들은 언제나 나의 손을 거쳐 배서령 앞에 전해졌다.
나는 그림자처럼 그들의 곁에 머물러, 남의 기쁨을 대신 쥐고서 그들이 나누는 깊은 사랑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런 세월 동안, 나는 무시당하는 데 익숙해졌다.
생모는 상서부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첩이었다. 나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나는 상서부에서 잡일하는 하인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자랐다.
훗날 궁에 들어가 배서령과 함께 글공부할 때도, 태자와 공주들은 나를 그저 손발이 빠른 궁녀쯤으로 여기며 부리기 일쑤였다.
그 뒤 강씨 가문에 시집와서 진북 장군 부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식품이었다.
나는 조용히 있는 데 익숙해졌고 물러서는 데 익숙해졌으며 스스로 구석에 움츠러드는 데 익숙해졌다. 겨루지 않고 다투지 않고 소리 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런 천한 출신의 첩자식이라면 애초에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4화
나는 강묵호와의 혼인을 늘 과분한 것이라 여겼다.
어차피 나는 그가 마음에 둔 사람이 먼 곳으로 떠난 뒤 교지 한 장으로 억지로 자리를 채운 대체품일 뿐이었으니까.
내가 바랐던 편안함도, 내게만 주는 다정함도, 진심도 모두 다른 이에게 돌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수레가 저잣거리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휘장을 살짝 들추었다가 시선이 딱 멈췄다.
병영에서 병사를 점검해야 할 강묵호가 바로 그곳에 서 있었다. 낮에 죽을 나누어 주던 자리에서 배서령과 함께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갑옷을 벗고 평소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움직임은 여전히 날렵했다.
나무 탁자를 직접 옮기며 그녀를 위해 밀려드는 사람들을 막아 주고 있었다.
"이런 일은 하인들에게 시키면 되지, 공주께서 직접 하실 필요 없소."
그의 목소리는 평소 나에게 할 때와는 다른, 흔치 않은 부드러움이 묻어 있었다.
배서령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끝에 나무 부스러기가 묻었지만 온화하게 웃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은 다 그대가 해 주지 않았소? 그대가 없으니 다른 사람 손을 빌리는 게 불편하더라."
강묵호가 탁자를 옮기던 손을 멈추고 대답하지 않았다.
배서령의 시선이 그의 허리춤에 찬 검에 닿았다. 그녀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 검술, 아직도 그때 내가 선물한 걸 달고 있구나."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검술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였다.
실이 풀리고 색이 바래서 그의 당당한 위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오 년을 전장에서 싸우며, 무기도 갈아치우고 갑옷도 갈아입었으면서 오직 이 낡은 검술만은 검에 계속 달고 있었다.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나서서 그를 위해 여러 개를 만들어 주었지만 그는 모두 서재에 내버려두었다.
아마 세월이 지나면서 이미 먼지가 쌓였을 것이다.
알고 보니, 그녀가 머나먼 이국으로 떠났더라도 그는 그녀의 흔적이 그의 삶을 가득 채우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그 아픈 장면을 가리려고 천천히 휘장을 내렸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본 것이다. 강묵호가 직접 내린 답을.
나와 그는 정말로 그저 어쩔 수 없이 채워진 자리였을 뿐이었다.
요 며칠 동안 마음이 뒤숭숭하고 몸도 지쳐서 나는 드물게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밖에는 눈이 그치고 어스름한 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옷을 걸치고 창가로 걸어갔다.
마침 두 어린 하녀가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들었어? 오늘 해 질 녘에 장군님이 직접 공주를 공주부로 바래다주셨다지. 두 사람이 우산을 함께 쓰고 있었는데, 온 거리에서 다 봤대."
"그럼 당연하지. 공주가 돌아오니, 장군님 눈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어디 있겠어? 우리 장군부도 곧 주인이 바뀌지 않을까?"
"부인도 참 불쌍하지. 삼 년 동안 정성껏 모셨는데, 결국 공주한테 밀리는 신세라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몸을 돌려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종이를 펼치고, 먹을 갈았다.
붓끝이 내려지자 한 줄 한 줄 또렷하고 단정한 글씨가 남았다.
원망도 하소연도 없었다. 오직 평온한 진술뿐이었다.
먹이 마르자, 나는 편지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 그리고 간단한 보따리를 하나 쌌다.
그 안에는 몇 벌의 평상복과 몇 권의 낡은 책뿐이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홀로 왔으니 깨끗이 떠나리라.
저녁 무렵, 강묵호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문을 들어서며 기름종이로 싼 보따리를 하나 들고 있었다.
"거리 모퉁이를 지나다가, 그대가 좋아하는 계화 떡을 샀소."
나는 그 가게를 알고 있었다. 공주부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이제 나와 갈라서려 하면서 계화 떡 한 봉지로 이 삼 년의 시간을 달래려는 것일까?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웃음이 느껴졌다.
나는 기름종이 보따리를 받아 들고 가슴 속 깊은 통증을 참으며 그에게 가볍게 미소 지어 보였다.
제5화
"장군님, 고맙네요."
계화 떡은 부드럽고 달콤했지만 내 마음의 쓰라림은 풀리지 않았다.
결혼한 지 삼 년, 그는 언제나 그랬다.
내 입맛을 기억하고 내 버릇을 기억하며 알맞은 때에 알맞은 다정함을 건네곤 했다.
그는 부군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해냈다.
다만,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씻으러 갔다.
나는 등잔불 아래 앉아 그가 낮에 검을 연습하다 찢은 겉옷을 한 땀 한 땀 꿰매고 있었다.
무인에게 옷감은 쉽게 찢어지기 마련이었다. 이 일은 한 번도 남에게 맡긴 적이 없었다.
"내일 기워도 늦지 않소."
그가 젖은 머리를 닦으며 다가왔다.
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바늘귀에 실을 꿰며 답했다.
"거의 다 됐습니다."
삼 년을 부부로 살아왔다. 이것이 내가 그를 위해 해 주는 마지막 일이었다.
나는 바느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겨울에 검술을 익힐 때는 너무 이르게 하지 마세요. 새벽 서리는 폐에 해롭습니다."
"탕약은 이미 하인들에게 때맞춰 달이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제사 의장대가 번잡하니 허리춤의 패옥은 체면을 잃지 않도록 꼭 단단히 매세요."
나는 삼 년 동안 정성껏 챙겨 온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나씩 그에게 늘어놓았다.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야 나는 뒤늦게 멈추고 어색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나 봅니다."
강묵호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오늘 내가 유난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그의 입술이 몇 번 움직였지만, 결국은 가볍게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나는 시선을 내리고 마지막 바늘을 꿰었다.
옷자락의 푸른 대나무 수놓음이 유난히 싱그러웠다.
나는 바늘을 내려놓고 겉옷을 반듯하게 접었다.
잠시 멈칫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겨 두었다.
강묵호와 배서령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그들의 삶에 가시처럼 박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모습은 너무나도 불필요해 보였다.
어느새 강묵호가 내 뒤로 다가와 있었다.
"무슨 일이오?"
그의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멀리 가 있던 내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옷이 찢어지면 새로 사면 될 것을, 이렇게 기워 입는 게 오히려 보기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네 손재주가 좋으니 새것으로 갈 필요 없소."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숨결이 내 목덜미에 닿아 묘하게 간지러웠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내게 할 말이 없으신가요?"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화리(和離)인가, 아니면 휴서인가?
아니면 설마, 그가 나를 첩으로 삼으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떠나겠다.
그와 나는 부모의 명과 중매인의 말만으로 이룬 혼인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오래도록.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소."
그렇게 말하고는 예전처럼 나를 번쩍 안아 침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품에 갇힌 나는 고개를 들면 그의 차갑고 날카로운 턱선이 보였다.
이 얼굴을 나는 삼 년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나 기억 속에 배서령을 따라 도성을 누비던 소년과는 결코 겹치지 않았다.
나는 눈앞의 이 사람을 사랑한다.
그러나 지난 사랑에 갇힌 그 부분까지는 사랑할 수 없었다.
등잔불이 흔들리고 눈빛에 욕정이 어린 그는 몸을 숙여 다가왔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의 가슴을 막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소매 속에서 접어 둔 서신을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강묵호."
내 목소리는 평온했다.
"우리 화리합시다."